"가야 연맹 집사의 역할과 영향력 분석" "백제 성왕의 가야 연맹에 대한 외교 정책과 대응"

 "가야 연맹 집사의 역할과 영향력 분석"

"백제 성왕의 가야 연맹에 대한 외교 정책과 대응"



먼저 오해를 풀기 위해, 


'임나일본부 = 식민지'라는 기존의 식민사학의 주장은 이미 한일 학계 공통으로 폐기된지 오래 되었다.




'임나일본부'라는건 어떤 통치 기구나 기관이 아니고 야마토 왕의 대리인이나 왜국 연맹에서 제2인자인 키비 쪽이 보낸 외교관의 호칭 혹은 명칭이라는건 한국 학계,일본 학계 둘 다 거의 정설이 되어있는 상황이다.




(임나일본부는 임나(금관가야의 별명)에 야마토('일본'이란 글자를 '야마토'라고 읽는다.) 왕이 보낸 '미코토 모치'(한자로 '부'라고 적는다.) 란 뜻이다. 즉 야마토 왕의 대리인이란 뜻이다.


당시 야마토는 오사카 키나이 카와치 지역의 좀 큰 나라인데. 


야마토는 일본열도의 30여개 나라를 연맹으로 묶고 다스리고 있었다. 그 기원은 서기 2세기 후반~서기 3세기 중엽 히미코 여왕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임나일본부가 단순히 외교관 역할만 했는지, 아니면 어떤 뜨거운 입김을 후 후 불었는지는 아직 학계에서


정확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서기 6세기 후반 백제 성왕은 임나일본부가 가야 연맹이 다시 재기하는 것을 자꾸 방해하고 신라랑 짝짜꿍한다면서


왜왕에게 따지는 편지를 여러번 보냈다. 


하지만 임나일본부는 왜왕의 말도 듣지않는 것들이었다.


성왕은 그렇게 왜왕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유학 박사,승려를 보내 왜왕이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있는


왜국 연맹권을 하나의 중앙집권으로 묶는 걸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성왕은 가야 연맹의 재기를 백제가 도와주겠다고 여러번 선언했지만 가야 연맹 왕들과 '집사'들과 '임나일본부'는 제사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성왕의 부름에 여러번 응하지 않았다.




여기서 '집사'라는 존재가 특이한데. 족장이면 몰라도 '집사'란 표현이 나오는게 굉장히 특이하다.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본기를 보면 온조왕은 북한 평양의 낙랑태수를 '집사'라고 부른다.


즉 한나라 황제를 대신해 북한을 다스리는 사람이란 뜻으로 '집사'란 말을 쓰는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본기는 백제측 사료를 서기 12세기 고려 관료 '김부식'이 다시 정리 한 것이다.




고로 '집사'라는 표현을 백제측 사료의 자주 쓰이는 표현 혹은 백제측 사료의 특징적인 단어라고 가설을 세워본다면


일본서기의 성왕과 임나일본부 사이의 실랑이 에서 '집사'란 표현들이 나오는걸로 볼 때


일본서기 작성에는 백제측 사료가 많이 쓰였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백제가 가야 연맹의 족장들을 '집사'라고 불렀다면, 그것이 가야측에서도 그리 부르는건지,


혹은 백제가 일방적으로 그리 부르는건지 몰라도,  만약 그것이 가야측에서도 쓰이는 관직 표현이었다면 


가야 연맹의 왕들은 각각 '집사'를 두어서 각 마을을 다스리게 했을수도 있겠다.




가야 연맹의 집사들과 임나일본부는 백제 성왕의 소집령에 응하지 않고, 왜왕의 말도 따르지 않았다.


이들은 신라와 친하게 행동했다. 


결국 이런 불협화음으로 꼬이고 꼬이다가 결국 신라가 가야를 다 꿀꺽 먹고 '임나' 혹은 '가라(가야)'라고 불리던 거대한 세력은


경상남도에서 싸그리 사라지게된다.




그러나 삼국시대 말기까지도 '임나'는 여전히 일본서기에서 야마토에게 조공 바치는 나라로 나오며,


백제 사신과 함께 조공을 하러 온다. 어쩌면 백제는 삼국시대 말기까지도 가야 영토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권을 주장하며


가야 잔여 세력들을 전라도에 두고 '임나'라고 하는 작은 '간판' 비슷한 느낌의 나라로 두어서


왜왕에게 외교하러 갈 때, 같이 임나국 사신도 같이 따라오게해서 가야 영토에 대한 영향권 주장을 계속 행사했을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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