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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숭신천황의 미스터리

 일본서기 숭신천황의 미스터리 일본서기를 보면 숭신천황 그러니까 스진 스메라 미코토의 이름은 '미마키 이리 히코(Mimaki Iri Hiko)' 라고 나온다. 이리iri는 숭신 이후의 야마토 천황들이 이름 중간에 쓰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뭔가 어떤 씨족 집단의 이름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리iri의 한자 표기는 입(入) 즉 들어올 입(入)으로 적혀 있다. '히코(Hiko)'는 대충 존귀한 분이란 뜻이다. 여기서 '미마키(Mimaki)'가 중요한데. 숭신천황기,숭인천황기에서 '큰 가라(금관가야)'의 왕자 아라사등이 야마토에 조공.. 아니 그러니까 무역을 하러 왔을 때 숭인천황이 말하기를 "아 니가 이토국(일본열도 규슈 쪽 후쿠오카의 이토지마 반도의 소국)에 붙잡혀서 거기서 좀 사는 동안 선대 천황인 숭신천황께서 돌아가셨다. 숭신천황 이름이 미마키다. 존나 슬프니까 이제부터 니 나라로 돌아가면 나라 이름을 미마키에서 따서 미마나(Mimana)라고 바꾸렴"이라고 말했다. 이에 아라사등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왕이 된 후 국호를 '미마나'로 바꾸었는데. 이 미마나를 한자로 적으면 '임나(任那)'다. 물론 천황이 그렇게 말했다고 금관가야가 나라 이름을 바꿀리는 없다. 비록 이토국이 야마토 연맹의 회원국이긴 하지만  회원국인 이토국 하나도 통제 제대로 못하는 오사카 키나이 카와치의 부족국 야마토가 무슨수로 바다 건너 가야의 나라 이름을  바꾸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다만 고고학적으로 보면 김해 대성동 고분군 수장들과 야마토의 고분 수장들이 서로간에 중요한 신물을 교환한 정황이 드러나고, 숭신천황의 이름에 미마나 그러니까 임나의 실제 발음인 '미마나'와 비슷한 '미마키'가 있는 것도 그렇고. 옛날 고대 조선과 일본어에서 '키(Ki)'라는 말이 '성(城)'을 뜻했다고 하더라.   미마나의 '나(na)...

"가야 연맹 집사의 역할과 영향력 분석" "백제 성왕의 가야 연맹에 대한 외교 정책과 대응"

 "가야 연맹 집사의 역할과 영향력 분석" "백제 성왕의 가야 연맹에 대한 외교 정책과 대응" 먼저 오해를 풀기 위해,  '임나일본부 = 식민지'라는 기존의 식민사학의 주장은 이미 한일 학계 공통으로 폐기된지 오래 되었다. '임나일본부'라는건 어떤 통치 기구나 기관이 아니고 야마토 왕의 대리인이나 왜국 연맹에서 제2인자인 키비 쪽이 보낸 외교관의 호칭 혹은 명칭이라는건 한국 학계,일본 학계 둘 다 거의 정설이 되어있는 상황이다. (임나일본부는 임나(금관가야의 별명)에 야마토('일본'이란 글자를 '야마토'라고 읽는다.) 왕이 보낸 '미코토 모치'(한자로 '부'라고 적는다.) 란 뜻이다. 즉 야마토 왕의 대리인이란 뜻이다. 당시 야마토는 오사카 키나이 카와치 지역의 좀 큰 나라인데.  야마토는 일본열도의 30여개 나라를 연맹으로 묶고 다스리고 있었다. 그 기원은 서기 2세기 후반~서기 3세기 중엽 히미코 여왕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임나일본부가 단순히 외교관 역할만 했는지, 아니면 어떤 뜨거운 입김을 후 후 불었는지는 아직 학계에서 정확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서기 6세기 후반 백제 성왕은 임나일본부가 가야 연맹이 다시 재기하는 것을 자꾸 방해하고 신라랑 짝짜꿍한다면서 왜왕에게 따지는 편지를 여러번 보냈다.  하지만 임나일본부는 왜왕의 말도 듣지않는 것들이었다. 성왕은 그렇게 왜왕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유학 박사,승려를 보내 왜왕이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있는 왜국 연맹권을 하나의 중앙집권으로 묶는 걸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성왕은 가야 연맹의 재기를 백제가 도와주겠다고 여러번 선언했지만 가야 연맹 왕들과 '집사'들과 '임나일본부'는 제사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성왕의 부름에 여러번 응하지 않았다. 여기서 '집사'라는 존재가 특이한데. 족장이면 몰라도 '집사'란 표현이 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