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풍후의 광개토비와 진경대사비문을 통해 본 임나가라
책사풍후의 광개토비와 진경대사비문을 통해 본 임나가라
광개토비에 금관가야를 '임나가라'로 적고있고
고대 중국 기록 송서 왜국전에도 '임나','가라' 이렇게 적혀있고
삼국사기 강수 열전에도 강수의 조상이 '임나가량(任那加良)'' 이렇게 적혀있음 일본서기에서도 임나는 가야의 별명으로 나오는데 가야를 '가라'라고 적고있음 .
임나는 금관가야의 별명이고
금관가야는 가야연맹을 대표하는 나라인데 당시 가야는 '가라'라고 불렸음
'가야'는 고려시대 사료에서 주로 쓰이는거.
"自倭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
拔新羅城, 鹽城, 倭寇大潰, 城內
왜의 배후를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까지 이르자 성은 즉각 항복하여 안라인으로 지키게 하였다.
신라성과 염성을 장악하여 왜구는 크게 무너졌다."
_광개토비 비문
여기 이렇게 금관가야 별명이 임나로 나오죠
그리고 당시엔 가야가 아니라 '가라'입니다
'가야'는 후대 고려시대 사료의 표현임
금관가라 왕족의 후손 김유신의 후손인
'진경대사'의 비문에 김유신을 임나가라 왕족의
후손이라고 적고있고
'초발의 성스런 가지'라고 가문의 별명까지
적고있는데
광개토비엔 임나가라의 성城 중 하나로
'종발從拔'성을 적고있습니다
'종발','초발' 둘 다 끝글자가 '발拔'이고
한자도 똑같은 拔입니다
大師諱審希俗姓新金氏
진경대사의 이름은 심희(審希), 속성은 김씨(金氏)다.
其先任那王族草拔聖枝
그 선조는 임나(任那)의 왕족 초발성지(草拔聖枝)인데,
每苦隣兵
매번 이웃나라 병사들로 괴로워하다가
投於我國
우리나라(신라)에 투항했다
遠祖興武大王鼇山稟氣鰈水騰精握文符而出自相庭
먼 조상(遠祖)인 흥무대왕(興武大王)은 오산(鼇山) 稟氣하고, 바다(鰈水) 騰精하여, 문신의 길조를 잡아 재상의 뜰에 나왔고,
携武略而高扶王室▨▨」
終平二敵永安兎郡之人克奉三朝遐撫辰韓之俗
무신의 지략을 잡아 왕실을 높이 부양하였으며, 평생토록 ▨▨하여 두 적(고구려 백제)이 영원히 안정되고
안토군(安兎郡)의 사람들이 능히 세 조정을 받들어 멀리 진한(辰韓)의 풍속을 어루만졌다.".
考盃相道高莊老志慕松喬水雲雖縱其閑居朝野恨其無貴仕
妣朴氏嘗以坐而假寐夢得休▨▨」
_창원昌原 봉림사鳳林寺 진경대사眞鏡大師
보월능공탑비寶月凌空塔碑(서기 924년)
왕건의 후삼국통일이 서기 936년이므로
서기 924년은 아직 통일신라 시대임
에휴 ㅁᆞㅣㅇ 청이 김해 금관가야 유적 발굴 결과 김해의 북쪽으로도 바닷물이 흐르고있었음 김해 고지도에도 나오는거임 임나가 한반도에 없으면 광개토비에서 고구려 보병 기병 5만이 신라 수도 점령한 왜군 싹 몰아내고 도망치는 왜군 추격해서 임나가라의 종발성까지 추격해서 종발성 점령하고 왜군 쫓아내는데
그러면 종발성이 바다 건너 대마도에 있다는거임? 그러면 고구려군이 중간에 배를 탔다는 소리가 있어야지 이 ㅁㅓㅇ청아
진경대사 비문에 따르면 진경대사(大師)의 이름은 심희(審希)요, 속성은 김씨(金氏)입니다.
경주 김씨가 아니라 김해 김씨죠.
그러면 아래 진경대사의 비문은
其先任那王族草拔聖枝每苦隣兵投於我國
遠祖興武大王鼇山稟氣鰈水騰精握文符而出自相庭携武略而高扶王室
그 선조는 임나의 왕족 초발성지인데
맨날 이웃나라 병사한테 털리다가
우리나라(신라)에 투항했다
먼 조상 흥무대왕(김유신)은 ㅈ ㅗ ㄴ 나 대단해서......
이렇게 깔끔하게 번역되는데.
뭔 흥무대왕한테 임나왕족이 개털려 투항했다는 ㄱ ㅐ 소리를 하고있습니까...
흥무대왕=김유신이고 김유신 성씨가 김해 김씨잖아요.
진경대사 성씨도 김씨 그니까 김해 김씨구요
꼬우면 진경대사 성씨가 경주 김씨라는 증거를 가져와 이 ㅁ ㅓ ㅇ 청아
고대 중국 기록 송서 왜국전을 보면 임나 ,가라 이렇게 서로 구분되어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금관가야 왕족 김유신의 후손 진경대사의 비문을 보면 금관가야를 '임나'라 적고 있습니다
임나는 금관가야 , 가라는 가야연맹에 가입한 모든 회원국들(가야 소국들)의 총칭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진경대사비문엔 금관가야를 ' 임나'라고 적고 있습니다 마한연맹의 회장국이 목지국인것처럼 가야연맹의 회장국도 '임나(금관가야)'였는데 광개토가 임나가라를 쳐서 임나가라 즉 금관가야 주도의 가야연맹이 쇠약해집니다 그 결과 임나랑 가라 즉 금관가야 주도의 남부 가야연맹(남가라) 그리고 대가라국 주도의 또 다른 북부가야동맹(가라) 이렇게 남북으로 쪼개지는거죠 그래서 송서 왜국전에서 임나랑 가라가 서로 구분되고있는겁니다
그래서 일본서기에서 6세기 초반에 신라 이사부한테 따 ㅁㅓㄱ힌 임나가 '남가라(금관가야 주도의 남부 가야연맹)'로 나옵니다
임나는 사료들에서 금관가야의 별명 혹은 금관가야가 주도하던 가야연맹의 별명. 혹은 야마토의 영향력이 미치는 가야연맹의 별명.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있음. 분명 서기 562년에 가야가 몽땅 다 멸망했는데도 그 후로도 계속 '임나'는 일본서기에서 등장하고있음.
이건 서기 5세기 후반~서기 6세기 전반에 걸쳐 전라도에서 야마토 연맹 회원국의 무덤인 전방후원분들이 여러개 축조된 것이나
전라도의 전방후원분들,횡혈식석실 고분들에서 백제 토기,가야 토기,신라 토기,왜국 갑주가 발굴되는 것으로 볼 때 전라도 마한연맹(침미다례) 세력권 내부에 백제나 가야의 원조를 받는 왜국 세력이 들어와있었다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음.
실제로 일본서기를 보면 백제 아화 왕(아신왕)이 태자 전지를 왜국에 보내서 선대의 우호를 다시 닦고 침미다례 등 전라도 땅을 왜군이 주둔할 수 있도록 무상으로 줬다는 기록이 나옴. 왜 그랬냐면 당시 광개토가 백제 대부분 그러니까 무려 성을 58개나 활활 다 불바다로 만들어버려서 당시 백제는 병력도 자원도 영지도 전부 갈려버려서 ㄱ ㅓ 지가 된 상태였음.
그런 상태에서 백제가 전라도를 야마토 연맹한테 무상으로 대여해준 거는 야마토 연맹을 어떻게든 키우고 그 군대를 데려와서 고구려를 밟아버리려는 의도였음.
그러다가 임나가라를 위시한 야마토 연맹 세력이 전라도에까지 영향력을 넓히게된거고
가야연맹이 모두 멸망한 후에도
가야의 잔당들과 왜국 세력들은 여전히 전라도에 남아서 백제를 지원해주는 전라도 세력으로 남게된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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